안나의 편지

< 본문 – 누가복음 2:36-39 >

<여러분에게 온 편지 하나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안나입니다. 올해로 여든네 살이나 된 늙은이랍니다. 저는 참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감격과 흥분은 감출 수가 없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 복이 없는지 결혼한 후 7년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고, 제 인생을 참으로 고달프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남편 없이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달픈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사는 과부들은 대부분 일거리를 얻을 수 없어 늘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고아와 과부를 멸시해서는 안 되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3년에 한 번씩 십일조를 드려 가난하게 사는 우리를 구제하도록 말씀하셨지요. 그 덕분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사는 과부가 되었지만,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었답니다. 그럼에도 저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저를 하루라도 빨리 당신 곁으로 데려가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제게 성령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암송했던 율법의 말씀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말씀들이 자꾸만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뭔가 모를 기쁨이 제 마음에 가득 차곤 했지요. 그래서 저는 성전을 찾아가곤 했답니다. 성전을 찾아가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성전에 있는 여인의 뜰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생각하면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을 만큼 행복했답니다.

  그렇게 성전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있는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행복했는데,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로마의 압제를 받으면서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한 귀로 들려오는 듯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사는 시대에 평균 나이는 많아야 50입니다. 60을 넘으면 꽤나 오래 산 사람인 셈이지요. 그런데 저는 80이 넘었으니 참 오래 산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오래 살게 하신 것은 어쩌면 어려움 중에 있는 우리나라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자주 성전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힘들수록 다윗의 왕국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빨리 오셔서 이 힘든 시대를 마감 지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저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구요. 저 개인적으로도 가난하고 나이 많아 힘들게 살고 있지만, 온 나라가 지금 너무나도 힘들기에 이 힘든 시대가 빨리 마감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을 찾는 것이 그래서 더 행복했습니다. 성전 뜰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런 걱정이 잠시나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힘든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사명처럼 여겨졌지요. 저는 시간만 나면 성전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게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밤낮 가리지 않고 성전을 찾아갔고, 나이가 들면서 아예 성전에서 살다시피 했답니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시므온이라는 할아버지예요. 이분도 연세가 많고, 성전엘 자주 찾아오셨지요. 가끔 그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분명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비록 나이가 많지만, 네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분은 그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분도 나처럼 나이가 많아 몸이 몹시 약했습니다. 그래서 속히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길 원했지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기에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때로 마음이 조급한 것처럼 보이곤 했습니다. 몸은 점점 약해지는데, 언제 하나님 품에 안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시므온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성전을 자주 찾게 하시고, 성전에 가면 마음에 평화를 주신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든네 살이나 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지 않으신 이유가 나에게도 메시야를 만나게 하시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날은 좀 남달랐습니다. 그날도 밤새도록 성전 뜰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다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을 맞았어요. 그런데 웬지 그 햇살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졌어요. 그런 기분 좋은 아침에 감사하며 성전뜰을 거닐고 있는데, 여인의 뜰을 지나 남자들의 뜰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시므온 할아버지가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요. 어느 젊은 부부가 사내아이를 품에 안고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던 모양입니다. 시므온 할아버지가 그 아이를 안고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답니다.

  성전에는 종종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온 부부들이 있었어요. 율법에 사내아이는 태어난 지 40일, 여자 아이는 태어난 지 80일이 지나면 성전을 찾아와 정결예식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성전을 찾아오곤 한답니다. 그런데 그날 시므온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나 보였어요. 흥분과 감동에 젖은 듯이 말이에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찬양하는 거에요. ‘드디어 내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만 백성을 위해서 이 아이를 보내셨도다. 이 아이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큰 영광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에요.

  시므온 할아버지가 그렇게 흥분하며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제 마음 속에서도 뜨거운 기운이 솟아났어요.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이 아이가 바로 내가 보내신 메시아야, 온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고대하던 메시아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어요. 시므온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마치 자기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평온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의 모습 속에서 영광의 빛이 빛나는 것이 보였어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분명히 보였어요. 그리고 마치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으로 이 아이를 가리키며 ‘이 아이다! 내가 세상을 위해 메시아로 보낸 아이다!’ 그러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 성령의 감동을 강하게 느꼈지요. 나는 비록 그 아이를 안을만한 힘은 없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할 힘은 있었어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가 이 아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우리 민족을 속량하시기 위해 당신의 메시아를 보내주셨노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은 내가 살아온 84년의 일생 중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메시아를 보내주신 엄청난 사건을 제 눈으로 친히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저는 알 수 없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오셨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분명한 희망 말이에요. 사람들은 알지 못할 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옛날 우리 조상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가 생각났거든요.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하던 우리 선조들이 너무 고달파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셨지요. 레위인의 집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 모세, 그는 비록 바로의 압제로 인해 우리 조상들은 고달픈 나날을 보내야 했지만 그들에게 감추어진 희망의 빛이었어요, 그 빛이 우리 조상들을 비추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80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를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셔서 애굽에서 고통당하던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셨지요. 어린 모세가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던져저 생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모세를 살려내셨고, 히브리인의 원수인 바로의 궁궐에서 자라게 하셨지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켜주셨고, 결국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답니다.

  이 아이, 메시아도 그럴 거에요. 어쩌면 이 아이도 수많은 많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몰라요. 우리의 원수 대적이 결코 메시아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 어떤 위협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거든요.

  그걸 알기에 제 가슴에는 흥분으로 가득했어요. 그 셀렘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아기 메시아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생각하니 어찌 흥분되지 않겠어요? 지금 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은 작은 징조에 불과할지 몰라요. 그러나 비록 작은 징조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 아이를 통해서 이루실 거에요. 엘리야 선지자가 그랬잖아요. 엘리야 선지자는 지중해에서 떠오른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서 큰 비가 올 것을 알았어요. 그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가 지금은 부모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인 이 아이를 통해서 당신의 뜻하신 바 엄청난 일을 반드시 이루실 거예요.

  저는 참 행복한 여인이랍니다. 비록 여든네 살까지 힘겹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힘든 것도 많았고 고통의 순간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보았으니 저는 정말 복받은 여인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아이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요. 또 메시아를 통해서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온 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기도 한답니다.

  여러분, 이 늙은이의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는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우리 민족에 희망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희망이에요. 희망은 우리에게 큰 힘을 주잖아요. 우리는 모두 힘든 순간을 살아가지요.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힘든 때일수도 있어요. 그런데 희망은 우리에게 그 힘듦을 참아낼 용기를 주지요. 여러분,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보세요. 하나님의 뜻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모세가 태어나고 80년이 지나서야 우리 민족은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되었지요. 지금 이 메시아의 탄생은 우리에게 희망이에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희망 말이에요.

  이제 저는 조용히 눈을 감으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렵니다. 평안히 말입니다. 하나님의 징조를 보았으니 이젠 여한이 없어요. 바라기는 제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도 이 메시아를 꼭 만나기를 바래요.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실 메시아,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주실 메시아, 그 메시아를 만나면 여러분도 저처럼 행복해질 거에요. 아무리 삶이 힘들었어도 마음에는 하늘의 평안이 가득해질 거에요.

  그래서 메시아의 탄생은 우리 모두에게 한없는 기쁨이랍니다. 그 메시아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둠의 세력을 이기실 메시아, 죽음의 세력을 이기실 메시아, 그분의 탄생은 온 인류에게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이에요. 바라기는 제가 누렸던 그 진한 감동과 흥분과 감격을 여러분도 꼭 느끼시고, 제 마음에 찾아온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전 4년 예루살렘의 안나로부터.

< 2021년 12월 25일 성탄감사예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