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수요일) 아침의 묵상 – 자존심이 상할 때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1910-1997)가 잘 알려지지 않던 무명시절,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구걸하게 되었습니다. 한 빵집으로 가서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빵 좀 기부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빵집 주인은 적선은 고사하고 “아, 재수 없어. 얼른 꺼져버려!”라며 테레사 수녀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테레사 수녀는 또 한 번 간청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며칠째 굶고 있습니다. 남는 빵이 있으면 좀 주십시오.” 그때 같이 갔던 봉사자가 울컥하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이렇게 심한 모욕을 당하고도 수녀님은 굴욕스럽지도 않으세요? 빨리 나갑시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빵을 구하러 왔지, 자존심을 구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많은 들어본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오(顔)는 일본어로 ‘얼굴, 낯’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쓴다면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영화배우 강수연(1966-2022) 씨라고 합니다.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한 말인데, 이를 지켜봤던 류승완 감독이 이 말을 영화 ‘베테랑’에서 사용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영화배우로서의 자존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자’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 자존심이 우리로 용기를 갖게 하고, 때로는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을 때에도 자존심을 앞세움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존심으로 인해 우리가 당당해지기보다는 헛된 자존심으로 인해 내 삶이 더욱 힘들거나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자존심을 앞장 세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한 것처럼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나의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참아주고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비로소 깨닫기 때문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때로 내가 굴욕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테레사 수녀가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구걸하듯 ‘빵을 좀 달라’고 부탁을 한 이유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굶주리고 있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쯤은 감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존심이 짓밟히는 상황도 참아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치욕을 당하시고 가장 비참한 십자가에 처형당하심을 거부하지 않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를 죄악의 형벌 가운데, 마귀의 노예로 버려둘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존심도 다 내려놓으시고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당신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상황을 이겨내게 했던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존심이 자존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 자존심이 짓밟힌다 하더라도 넉넉히 감당할 힘과 용기를 줍니다. 오늘 하루도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지 않고,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을 이겨내십시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