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금요일) 아침의 묵상 – 무기력하신 예수님

1864년, 독일의 외교관인 크루드 폰 슐뢰처(Kurd von Schozer)는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인 몬세라토 델리 스파뇰리 성당(Santa Maria in Monserrato degli Spagnoli)의 창고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합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유골이 들어 있었는데, 교황 갈리스토 3세(Callistus Ⅲ, 1455-1458년 재위)와 그의 조카이자 역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 1492-1503년 재위)의 유골이었습니다. 왜 그 두 교황의 유골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지 않고 그곳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이 두 교황도 처음에는 다른 교황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을 새롭게 만들면서 몇몇 교황의 무덤을 이전해야 했고, 광장이 완성된 뒤 같은 장소에 다시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황의 시신은 원래 묻혀 있던 장소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두 교황이 임기 동안 저지른 악행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알렉산데르 6세는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뛰어난 수완을 가지고 있었지만, 권모술수의 달인이었고, 뇌물과 돈세탁, 그리고 매관매직에 친인척 비리를 조장하고, 밀실 정치를 일삼는 등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삼촌인 갈리스토 3세가 교황에 되자, 막강한 뒷배를 믿고 로마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는 추기경 직책을 수행할 때 카타네이(Cattanei)라는 여인을 애첩으로 두었고,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은 11살에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불과 18살에 추기경이 되었으나 23살에 역사상 최초로 추기경 직에서 사임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고, 이후 교황군대의 총사령관 자리를 꿰차기도 했습니다. 1500년 6월 29일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벼락을 맞아 머리에 두 군데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악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경고하신 사인(Sign)일 수 있는데,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그나 그의 삼촌인 갈리스토 3세가 모두 로마 출신이 아니라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의 수장이라고 하는 교황이 결코 신앙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계산만을 일삼고 자기 권력과 정욕에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랬기에 11년 동안이나 교황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그의 시신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장 주님의 제자다움을 유지해야 할 교황이 교황다움은 둘째 치고라도, 신앙인다움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은 역사의 큰 수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적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신앙의 자리에 서야 할 사람이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권력에 도취되어 산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권력에는 철저하게 무능하셨습니다. 그랬기에 열두 군단도 더 되는 천사(마 26:53)를 동원하실 수도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권력에 대해서도 무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관심이 없으셨을 뿐만 아니라, 종교권력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권력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오늘을 ‘성금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더욱 주님을 닮는 제자가 되겠다는 다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권력이든 힘의 자리에 서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