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수요일) 아침의 묵상 – 탈출 밸브(escape valve)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Alan Rusbridger)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피아니스트들도 치기 어렵다고 하는 쇼팽(Chopin, 1810-1849)의 ‘발라디 1번 G단조’를 연주하는 작은 공연을 여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을 위한 음악캠프에서 자극을 받아 ‘발라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게 그의 나이 57세였습니다. 그는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행동에 나섭니다. 편집장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20분씩 연습시간을 갖습니다. 그의 발라드 프로젝트는 2010년 8월에 시작하여 16개월 후인 2011년 12월 13일 연주회를 끝으로 계획했던 연주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매일 연습을 하던 그 기간은 ‘가디언’지가 창간된 이래 가장 숨가쁜 1년이라고 할만큼 굵직한 사건들이 많은 때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문 레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연습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경험을 기록한 책 『다시, 피아노』에서 매일 피아노를 치는 그 20분을 ‘탈출 밸브’(escape valve)라고 말합니다. ‘탈출 밸브’란 일하면서 받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안정과 기쁨을 주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냄으로써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던 바로 그때, 자그마한 탈출 밸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엇인가에 100% 전념함으로써 삶의 균형을 되찾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57세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썼던 16개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게 삶의 활력을 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아니 압박과 스트레스는 주는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특별히 현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너무 바쁘다’는 말을, 그리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확실한 ‘탈출 밸브’가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쁘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초청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이 말씀은 누구나 품어주시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긍휼하심으로 품어주시고, 실수하고 넘어졌을지라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시고 다가와 일으켜 세워주시는 그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어떤 모습일지라도 다 품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긴장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긴장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 그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마음이 편해집니다. 나의 약점이나 허물이 드러나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분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신 주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힘들고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의 탈출 밸브가 되어주심을 고백하며, 주님으로 인해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