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목요일) 아침의 묵상 – 사택망처(徙宅忘妻)

고사성어에 사택망처(徙宅忘妻)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을 옮기면서 아내를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의 유래가 있습니다. 중국 위나라 왕숙(王肅)이 편찬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린 고사입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애공(哀公: BC494∼BC468)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애공이 공자(公子)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떤 글에서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한참을 웃었소이다. 이 사람은 매사에 건망증이 심했는데, 그 증세가 날로 심해져 마침내 새로 집을 얻어 이사를 하면서 마누라를 잊어버리고 옛집에 두고 왔다 하오. 아무리 심해도 그렇지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애공은 공자와의 대화에서 가벼운 우스갯말로 그렇게 말한 듯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심한 일이 아닙니다. 더 심한 사람은 마누라가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립니다.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폭군 걸왕(桀王)이나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귀한 천자의 자리에 올라 사해(四海)와 같은 부(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황음무도하고 극력사치하며 주지육림 속에서 나라를 잊고 백성을 잊고, 마침내 자신이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이지요. 이들이야말로 최고의 건망증 환자가 아니겠습니까?” 공자는 폭군이었던 걸왕이나 주왕이 국가의 중대한 일은 돌보지 않고 계속 악행을 저질러 나라를 망친 것을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사를 가면서 마누라를 잊고, 살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기 때문입니다. 정작 신경 써야 할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중요하지 않는 하찮은 일에 정신을 팔리니 중요한 것을 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놓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급한 것이 우선이 아니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급한 것을 우선시하기도 하고, 물질적 유익을 따라서 가치를 매기기도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이유는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수설가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 1928-2005)는 그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느림’이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미이다.” 천천히 가면 자세히 볼 수 있고, 멈추고 서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빠름이 덕목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 천천히 가는 것을 게으름으로 여기곤 합니다. 더군다나 멈추어 선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가거나 멈춰서길 거부하고 너무 바삐 가다 보니 정작 보아야 할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조차 잃어버리고 달려가기에만 여념이 없이 살곤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매여 살아서는 안 되지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으며 살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잊을 때, 그리고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지금의 나를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목표로 세운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고 가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나를 잊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으면 우리를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