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금요일) 아침의 묵상 – 오티움(Otium)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씨가 쓴 『오티움』이란 책이 있습니다. ‘오티움’(Otium)이란 ‘여가 또는 은퇴 후의 시간’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저자는 ‘소극적인 휴식을 넘어 자신을 재창조하는 능동적인 휴식’을 일컫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오티움에 다섯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초보자의 단계로, 의욕과 호기심,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고 이제 막 자신만이 누리를 수 있는 오티움을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초보 단계에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정보를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묻고 배웁니다. 그러나 종종 그런 관심과 노력에 비해 결과가 따르지 않기 때문에 답답해하거나 좌절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중급자로, 기본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익히고 실력도 늘어나면서 재미를 느끼고 몰입이 잘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슬럼프가 나타나기도 하고, 흥미를 잃어 실력이 늘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성장을 멈추어 난이도가 없는 여가활동을 이어가곤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상급자(숙련가) 단계로, 해당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지식을 숙달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초보자를 지도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도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창성을 갖지 못합니다. 독창성을 가지면 네 번째 단계로 올라섭니다. 전문가 단계입니다. 여기에서는 숙련된 지식이나 기술에 갇히지 않고 더 높은 의식적인 자기 수련을 통해 독창적인 기술이나 이론을 구축하게 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지도자입니다. 해당 분야에서 넘볼 수 없는 실력을 갖추고 독창적인 이론과 기술을 완성시키는 단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일만하며 살 순 없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또는 일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름대로 해결책을 마련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일시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자기를 성숙하게 만드는 오티움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에서뿐만 아니라 오티움이라는 여가에서도 우리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데 유익한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나 신앙이 성숙하고, 삶에 의미와 보람을 찾으며, 때로는 거기에서 얻고 축적한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어야 그의 여가활동은 더욱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성숙해지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유익을 주는 여가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고, 훈련한 후에도 그것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의 과정 없이 성숙이 없듯이, 수고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숙련가나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만족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그리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고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면 그건 더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또 아무리 기도를 잘하고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게 모두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결코 성숙한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신앙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살전 1:3)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의 수고’라고 말한 이유는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함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수고없는 사랑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여가(오티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다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