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화요일) 아침의 묵상 – 은혜를 잊지 말고

2년 전인 지난 2021년 12월 12일 한 70대 노인이 미국에 있는 친구의 부탁이라며 노란 봉투를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전달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빼곡하게 적은 편지와 2천 달러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뉴욕에 사는 70대 노인이 이 편지를 보낸 사연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어느 겨울밤, 서울 서대문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강원도 농촌에서 서울 신촌으로 상경해 어렵게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던 한 청년은 늦은 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허기진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리어카를 세우고 홍합탕을 파는 아주머니를 마주쳤습니다. 뜨끈한 홍합탕을 보니 더 배가 고팠지만 그의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고민하던 그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을까요? 돈은 내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선뜻 따뜻한 홍합탕 한 그릇을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형편이 좋지 않던 그는 끝내 돈을 갖다 드리지 못했고, 군 복무를 마친 후 미국 이민 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의 빚을 진 채 70대가 된 그는 감사의 마음과 속죄의 마음을 담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돈과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배고픈 시골뜨기 청년에게 기꺼이 홍합탕 한 그릇을 주었던 아주머니,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시간까지 마음에 진 빚을 어떻게든 갚기 위해서 많은 돈을 보내준 할아버지, 모두 우리 시대를 밝히는 주인공들입니다. 우리 옛 속담에 ‘은혜는 물이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뒤틀리고 왜곡된 마음을 드러낸 말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그 속담처럼 살아갈지라도, 거꾸로 은혜를 돌에 새겨 잊지 않고 원한은 물에 새겨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신앙인의 특징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에서 말씀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편 104:2)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은혜를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인이 자기 영혼(자기 자신)에게 ‘여호와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노력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 은혜를 잊지 않은 신앙인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습니다. 전래동화 ‘은혜 갚은 까치’에서 큰 구렁이가 까치의 새끼들을 노리고 있을 때, 한 선비가 화살로 구렁이를 쏘아 까치의 가족을 구해줍니다. 그 선비가 한 오두막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예쁜 아가씨로 변장한 구렁이의 아내가 선비를 죽이려 하자 까치가 자신의 머리로 종을 쳐서 선비를 구해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혜 갚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왔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렇게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암묵적 가르침에 세뇌되고 맙니다. 그래서 은혜는 갚아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 생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아야 하고,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갚아가야 합니다. 그게 인간됨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 안에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응답해 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