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토요일) 아침의 묵상 – 어둠의 시간

오스트리아의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가 쓴 ‘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라는 시를 읽어드립니다.

“내 본질의 어두운 시간을 나는 사랑합니다.

이 시간이면 나의 감각은 깊어지니까요.

마치 오래된 편지에서 느끼는 것처럼

이때 나는 지나온 나날의 삶의 모습을

저만치 전설처럼 아득하게 바라봅니다.

어두운 시간은 내게 알려줍니다, 또 다른 삶에 이르는

시간을 넘어선 드넓은 공간이 내게 있음을.

그리고 어쩌다 나는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묘지 위에 자라나 바람결에 가지를 흔들며

죽어간 소년이 슬픔과 노래 속에서 잃었던

(그의 주변에는 따스한 나무 뿌리가 얽혀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주는 그 나무와 같습니다.”

이 시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두운 시간을 사랑한다.’는 첫구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 그래서 마치 캄캄한 밤인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이라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렐케는 그 것은 ‘오래된 편지’라고 말합니다. 그 편지는 아마도 지나온 삶의 편력들일 것입니다. 내 삶이 내 인생에 써준 삶의 이력들 말입니다. 그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어두운 시간은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의 길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릴케의 시에서처럼 ‘시간을 넘어선 드넓은 공간이 내게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무한히 열려 있는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 줍니다.

릴케의 시에서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과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에 의해서 장례예법에 따라 요셉의 동굴무덤에 묻히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까지 캄캄함 어둠의 동굴 안에서 지내십니다. 오늘 토요일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혀 계시던 날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혀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슬픔이지만,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무덤 속에 묻히신 예수님에게 오늘은 쉼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너무나도 바쁘게 사셨습니다. 마가복음 3:20절의 표현에 의하면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홀로 하나님과 고독한 밤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그 때가 예수님께는 유일하게 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 이후에 무덤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편안히 쉬시는 시간을 즐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고통의 시간이 아닌 또 하나의 이유는 부활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다는 것을 예고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그렇습니다. 무덤은 그냥 죽음의 자리가 아닙니다. 부활을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무덤의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부활의 영광을 꿈꾸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어둠의 시간은 결코 고통의 시간인 것만은 아닙니다. 어둠의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줍니다. 잊혀진 지난 삶의 편지를 꺼내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앞으로 열려질 영광을 기대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깊은 수렁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기까지는 예수님께도 어둠의 시간이 었었듯이, 우리에게 어둠의 시간은 부활의 소망을 주는 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둠과 같은 시간을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또다른 선물임을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선물을 찾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